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이모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나는 김장우의 손을 잡아야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이모의 죽음이 나로 하여금 김장우의 손을 놓아버리게 만들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다.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죽는 건 - 자는 것뿐일지니,
잠 한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죽는 건, 자는 것. 자는 건
꿈꾸는 것일지도 - 아, 그게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잠 속에서 무슨 꿈이,
우리가 이 삶의 뒤엉킴을 떨쳤을 때
찾아올지 생각하면, 우린 멈출 수 밖에 -
그게 바로 불행이 오래오래 살아남는 이유로다.
왜냐면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비웃음,
압제자의 잘못, 잘난 자의 불손,
경멸받는 사랑의 고통, 법률의 늑장,
관리들의 무례함, 참을성 있는 양반들이
쓸모없는 자들에게 당하는 발길질을 견딜 건가?
단 한 자루 단검이면 자신을
청산할 수 있을진대. 누가 짐을 지고,
지겨운 한 세상을 투덜대며 땀흘릴까?
국경에서 그 어떤 나그네도 못 돌아온
미지의 나라, 죽음 후의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의지력을 교란하고, 우리가
모르는 재난으로 날아가느니, 우리가
아는 재난을 견디게끔 만들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양심 때문에 우리들 모두는
비겁자가 되어버리고, 그럼에 따라
결심의 붉은빛은 창백한 생각으로
병들어 버리고, 천하의 웅대한 계획도
흐름이 끊기면서 행동이란 이름을 잃어버린다.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당연히 필요한 사항을 알고 있어야 해. 너희 중 아무도 미국에 갈 수 없고, 너희 중 아무도 영화배우가 될 수 없다. 또 일전에 누군가가 슈퍼마켓에서 일하겠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너희 중 아무도 그럴 수 없어.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그거야말로 너희 각자가 태어난 이유지. 너희는 비디오에 나오는 배우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나랑도 다른 존재들이다.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미래가 정해져 있지.
훌륭한 그림을 그리는 건 중요한 일이야. 그게 하나의 증거이기 때문에 그런 것만이 아니야. 너 자신을 위해 중요하다고. 너 자신만 두고 보더라도 그걸 통해 많은 걸 얻을 수 있어.
정말 너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확신했다면 적어도 요구 정도는 해 봤어야지. 마담에게 가서 그렇게 해 달라고 요구했어야 해.
여깁니다. 보세요! 이 작품 좀 보시라고요! 이런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인간 이하의 열등한 존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기증 진행 계획의 실상이 환기되는 걸 원하지 않았단다. 사람들은 너희 학생들에 대해, 너희가 어떤 상황에서 성장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 다른 말로 하자면 얘들아, 너희가 어둠 속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 거야.